‘선택’의 무게를 짊어진 평범한 삶, KBS 드라마 <은수 좋은 날>이 던지는 질문

평범한 삶에 닥친 비극, '좋은 날'의 역설
<은수 좋은 날>은 2025년 9월 20일부터 2025년 10월 26일까지 KBS 2 TV에서 토요일과 일요일에, 쿠팡플레이에서도 방송된 미니 시리즈 드라마다. <은수 좋은 날>은 평범한 주부 강은수(이영애)가 시한부 남편 박도진(배수빈)의 치료비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우연히 얻은 마약 가방을 둘러싼 위험하고 처절한 동업에 뛰어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범죄 스릴러이다. 제목의 역설처럼, 주인공 은수의‘좋은 날’은 아이러니하게도 불법적인 수단으로부터 시작되며, 이는 곧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언제든 극한의 상황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질 수 있다는 현실의 냉혹함을 암시한다.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던지는 가장 묵직한 메시지는 바로 ‘극한의 상황에서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윤리적 선택의 무게’와 ‘생존을 위한 욕망이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아닐까 한다.

선악의 경계를 허무는 인물들의 입체
은수는 가족을 지키고 싶다는 지극히 이타적인 동기에서 출발하지만, 그 수단이 돌이킬 수 없는 범죄라는 점에서 그녀의 선택은 그녀에게 내적 갈등을 일으키게 하고 끊임없이 윤리적 시험대에 오르게 한다. 남편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떨리는 손으로 마약 거래를 시작하는 은수의 모습은 시청자에게 단순한 비난을 넘어선 복잡한 감정을 안겨주는데, 죄를 짓는 순간조차 그녀의 눈빛에는 엄마이자 아내로서의 절박한 책임감이 서려 있어, 선악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이와 대비되는 딸 박수아(김시아)의 학교 방과 후 미술 강사이자 마약 딜러인 이경(김영광)은 낮에는 다정하고도 실력 있는 미술 선생이지만 밤에는 마약 거래상으로 활약하며, "세상에 좋은 짓만 해서 부자 되는 사람도 있어요?"라는 질문을 던져 부조리한 현실 속 현대인의 불안정한 욕망과 복수심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여기에 형사 장태구(박용우)는 정의로운 인물인 듯 보이지만 이혼한 아내로부터 아들을 되찾고, 좋은 집을 마련하기 위하여 은수와 이경을 이용하여 돈을 갈취하는 입체적인 캐릭터로 누구에게나 각자의 사정이 있고, 직업을 떠나서 욕망을 달성하기 위한 무자비성을 보여준다.



'속죄' 이후에도 남는 끈질긴 유혹
은수와 이경 두 인물이 벼랑 끝에서 연대하고 대립하는 과정은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동시에, 인간 내면의 모순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드라마의 결말에서 은수와 이경이 죗값을 치르는 모습은 사회적 정의를 보여주지만, 진정한 주제 의식은 은수가 출소 후 모텔에서 청소일을 하면서 이불에서 발견한 마약 봉지를 변기에 버리려다 망설이는 마지막 장면에 응축된다. 이 망설임은 단순히 과거의 유혹에 대한 미련이 아니라,‘죄의 대가를 치렀다고 해서 유혹과 상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화면이 꺼진 후 들리는 은수가 마침내 물을 내리는 소리는 그녀가 비로소 과거의 잘못된 선택을 정리하고, 평온한 일상을 향한 겸허하고 고통스러운 ‘새로운‘ 선택과 출발’을 시작했음을 암시한다.

진정한 '좋은 날'의 의미와 시청 권유
궁극적으로 드라마 <은수 좋은 날>은 돈과 욕망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가족을 지키려다 괴물이 될 수밖에 없었던 평범한 개인의 비극을 밀도 있게 그려냈으며, 진정한‘좋은 날’이란 외부의 행운이 아닌, 모든 유혹을 이겨내고 스스로의 양심과 의지로 쟁취해야 할 삶의 평온이라는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여러 캐릭터들의 뛰어난 연기와 적절한 액션, 매회 긴장감 있는 스토리 전개는 드라마를 계속 시청하게 하는 힘인데 시청률이 높지 않은 게 아쉬울 뿐이다. 시청을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