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는 아나운서 송기백
요즘 다수의 드라마, 영화가 웹툰이나 웹소설을 원작으로 하기 때문에 JTBC 및 넷플릭스 드라마 <비밀은 없어>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뚜껑을 여니 동명의 네이버 웹툰과는 스토리가 다른 콘텐츠다. 말하는 것이, 그것도 정갈하게 말해야 하는 직업인인 아나운서 주인송기백(고경표 분)은 진행력도, 임기응변력도 뛰어나서 주변에서 칭찬 일색인, 막 뜨기 시작한 그러면서도 계속 잘 나가고 싶어 하는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아나운서다.
나락으로 떨어진 송기백
이대로 송기백의 능력이 계속 펼쳐졌다면 무난한 스토리의 드라마겠지만 우리의 주인공에게는 평탄할 때나 일이 잘 풀리기 시작할 때 항상 시련이 닥친다. 이 드라마의 여주인공인 예능 프로그램 작가 온 우주(강한나 분)와 이야기를 하던 중 온 힘을 다해 재채기를 하다가 옆에 있는 기계에 송기백의 몸이 닿으면서 감전이 되는데, 이후 송기백의 입은 고장이 나버리고 만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오는 반말, 거침없는 말들,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말로 나와버린 속마음은 실상 반듯한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숨겨왔던 억눌린 감정과 욕망의 발현이다.
이로 인해 그의 행보에 브레이크가 걸리게 되고, 잘 나가던 아나운서에서 잘 못 나가는 범인(凡人)이 되고 만다. 의기소침해진 그에게 연애 예능 프로그램인 섭외가 들어와서 출연하게 된 이후 다시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게 된다. 온우주를 선택하고 싶었던 송기백은 옛 연인인 민초희의 협박으로 방송에서는 민초희를 선택하지만 실상에서는 온우주와 연애하게 된다. 민초희는 이 방송이 가짜였다고 모함하는 개인 방송을 내보내자 송기백과 제작진에 대한 시청자의 반응은 다시 싸늘해진다. 사실 확인도 하지 않은 수많은 시청자와 네티즌의 무례하고 비난 어린 댓글이 SNS에 난무한다. SNS 상에는 실상에서 속마음을 드러내지 못하는 다수의 사람들이 속마음과 겉마음을 일치시키는 장을 열어준다. 어제의 팬이 오늘의 적이 되거나 그 반대가 되는 상황이 빈번히 일어나는 격렬한 장소다.
속마음과 겉마음의 균형 잡기
드라마 <비밀은 없어>는 일본 사회를 관통하는 문화코드인 혼내(本音, 속마음, 속내)와 다테마에(建前, 겉마음, 겉내)를 우리 식으로 표현한 드라마가 아닐까 한다. 내가 어떤 위치에 있기 때문에 말하지 못하는, 말할 수 없는 즉 혼내를 누르고 사는 사람이 과거의 송기백이었다면 어떤 위치에 있거나 말거나 혼내를 다 드러내서 겉내와 반드시 일치시키는 사람이 감전 이후의 송기백이다. 이런 사람들 주변에 꽤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일단 화병, 공황장애가 없다. 사회에 이런 이분법적인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서 다행이다 싶다. 혼내를 드러낼 때도 타인을 고려하면서 드러내는 인물은 온우주와 온우주의 엄마 온복자(백주희 분)다. 미운 상대방에게 직격탄을 날리지 않고 에둘러 말하면서도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을 강단 있게, 우아하게 들려준다. 겉내에 익숙한 송기백의 아버지 송인수(신정근 역)는 힘없는 가장이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과 유머로 가족의 평화를 잔잔하게 이끄는 인물이다. 그의 말은 다정하고, 자칫 소극적으로 보이는 그의 행동에는 힘이 있다.
인간이 신체적으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먹고 자야 하는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하지만 사회적으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말의 태도와 말의 시공간상황적 배경을 알아차려서 적극과 소극의 시소를 잘 타야 하는 것 같다. 감전 후의 송기백은 말과 감정의 시소를 타고 있다. 그의 말이 거칠어진 것을 알아차린 후 송기백은 자신의 욕망, 가족 사랑, 타인에 대한 배려에 집중하게 되었다. 시청자로서의 욕심은 과거의 송기백으로 돌아가기보다는 송기백이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할 말도 하면서 타인도 배려하고 자신 있게 살아가는 모습이다. 지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