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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아>-OTT 드라마, 지금 여기서, 충분하고 괜찮은 삶

by 콘텐츠 큐레이터 김윤 2023.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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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ENA 홈페이지

1.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일이 너무 많아서 과부하 상태에 있거나 무기력하거나 혹은 반복되는 업무가 지겨워서, 아니면 사람 관계가 힘들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성격상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고, 아무것도 안 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필자는 후자에 속하지만 기본적으로 게을러서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순간도 많습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은 늘 뭔가 해야 하고 바빠야 제대로 산다는 인식이 팽배합니다. 스스로도 그렇게 하고 남들도 그렇게 해야 제대로 산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SNS에서도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법', '하루를 48시간처럼 쓰는 법', '미라클 모닝' 등의 자기 계발과 시간 활용에 관한 피드와 영상이 즐비합니다. 여기에는 '남들보다 앞서가야 한다', '도태되면 안 된다'라는' 불안 의식이 전제되어 있고, 사회에서 인정받아야 하며 성공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성공은 사실 각자 다른 것인데 한국에서는 이러이러한 것이 성공이라는 프레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프레임 안에 들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해야 하고 아무것도 안 하면 무능력한 사람으로 취급받기 일쑤입니다. 심지어 손톱에 있는 가시랭이라도 뜯는 등 늘 무언가를 하고 있음을 증명해야 할 판입니다. 북유럽의 문화코드인 라곰(Lagom, 모자라거나 부족하지 않게 균형 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스웨덴인들의 라이프 스타일)이나 휘게(Hygge, 편안하고 아늑한 상태를 추구하는 덴마크인들의 라이프스타일)가 대한민국에 자리 잡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2.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들여다 보기

드라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는 주영현 작가의 동명 웹툰을 드라마화한 것으로 2022.11. 21.~12.27일까지 ENA에서, 현재는 넷플릭스와 티빙에서 방영하고 있는 김설현, 임시완 주연의 12부작 드라마입니다. 김설현이 맡은 주인공의 이름이 여름인 것은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여름에 휴가를 쓰는 것처럼 쉬어가는 때임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3.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가 말하는 것

1화에서 쉬어가야 할 여름이는 전혀 쉬지를 못합니다. 그가 맡은 일 외에 온갖 잡심부름에 인격적 모욕까지 당하면서도 혼자 살아가야 하기에 그것들을 묵묵히 온몸으로 받아들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다음 날도...... 설상가상으로 6년 사귄 애인은 여름이와의 관계를 지겨워하고, 어머니마저 돌아가십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지하철을 타고 가다 회사에 출근하지 않기로 하고 지하철을 반대로 타고 집으로 갑니다. 반대 방향은 출근길이 아니므로 한산하고 조용합니다. 이때 여름은 인생도 남들과 다른 반대쪽으로 가면 조용하고 평화로울 것이라고 생각하고 회사를 그만두고 쓰지 않는 물건들을 처분한 후 배낭 하나에 남은 물건들을 담고 6평 원룸을 떠나 안곡이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낯선 이를 보자마자 반기기보다는 빈둥거리는 젊은 여자를 탐탁지 않게 여깁니다.
특히 여름과 반대로 조용한 안곡을 떠나 번잡한 서울로의 입성을 학수고대하는 도서관 근무자 지영은 여름에게 그렇게 살면 안 불안해?’라고 묻습니다. 여름은 불안하다고 하면서도 남의 기준에 맞춰 살다가 병이 났으니, 이제 저랑 친해지는 중이라고 답하면서 불안을 기꺼이 수용합니다. 여기에서 불안이 두려워서, 불안하기 싫어서 나도 나랑 친하려고 해 봤던 적이 있나 싶었습니다.

4.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가 말하는 것

그런데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여름의 의지와 달리 이 마을에서는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여름이 저렴하게 빌린 집은 전 당구장이었는데 알고 보니 이곳에서 사람이 둘이나 죽었고, 그 사람들은 도서관 사서인 대범의 가족이었습니다. 가족의 죽음을 두 번이나 직접 목격한 대범은 PTSD에 시달리며 애써 밝게 살아나가는 조심스러운 캐릭터입니다. 아버지의 주사로부터, 학교 일진으로부터 끊임없이 폭행을 당한 봄이, 한글을 모르는 봄이의 할머니, 미국에서 전학 온 봄이의 친구, 거칠고 시기심 많은 이웃들 속에서 여름이는 자발적 해결사가 됩니다. 서울 회사에서는 주어진 일만 한 여름이었다면, 안곡 마을에서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마을 사람들을 도와주는 주체적 여름이가 됩니다. 이 마을에서의 여름이가 결코 평탄하게 살고 있다고 할 수는 없으나 서울에서보다 많이 웃는 여름이를 보게 되고, 한 뼘 성장한 여름이를 만나게 됩니다.
몇 개월 후 드디어 여름이는 다시 일을 시작합니다. 자전거를 타고 집집마다 돌면서 우유배달을 합니다. 적당한 시간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대범과의 데이트를 즐깁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다짐하고 그 시간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하지 싶습니다. 그 시간 동안 벌어진 일들을 오롯이 받아들이고 괜찮다고 말합니다.
마지막 회에서 여름은 정말 충분하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아직 모르지만, 나는 지금 충분하다. 살아보자라고 한다. 충분히 괜찮은 매 순간, 살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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