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요리를 대하는 자세
세상에는 요리하는 사람, 요리를 잘하는 사람, 요리를 직업상 의무적으로 하는 사람,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 요리에 관심 있는 사람, 요리에 정성을 다하는 사람, 요리를 대충하는 사람, 요리를 싫어하는 사람, 요리에 관심없는 사람 등 요리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방랑식객으로 불렸던 故 임지호씨는 이 중 요리하는 사람이자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면서 요리에 정성을 다하는 사람이다. 특이한 점은 다른 요리사와 달리 산, 들, 바다 등 자연에서 나는 풀, 이끼, 꽃, 심지어 나뭇가지 등을 이용해서 종래에 보기 어려운 음식들을 척척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한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적에는 사생아라는 이유로 놀림과 차별을 받게 되면서 집을 나와 방랑 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자연에 있는 것들의 성분이나 효능을 터득했다고 한다.
세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그에게는 낳아주셨지만 생이별한 친어머니, 길러주신 양어머니 그리고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나 긴 시간 인연을 맺은 길 위의 어머니가 있다. 아버지가 밖에서 낳은 자식이었던 임지호는 3살 때 아버지 집으로 보내졌고 자신을 맡기고 돌아가던 길에 교통사고로 사망하신 친어머니와 생이별을 하게 되었다. 어린 나이라 양어머니가 친어머니인 줄 알고 살았는데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된 후 충격을 받고 가출을 했다. 양어머니는 그를 걱정하고 애정 어리게 키우셨지만 그는 임종을 지키지 못한 한을 품고 살았다. 이런 과정에서 어머니에 대한 정을 그리워하며 살았고 자신에게 잘해준 양어머니와 누나들을 생각하며 떠돌다가 만난 어머니, 할머니, 누나 벌 되는 분들에게 자연의 재료로 요리해서 음식을 대접해 왔다.. 그중 한 할머니가 김순규 할머니다. 지리산에서 만나 10년을 어머니로 모신 분이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자연식재료
다큐멘터리 <밥정>에는 그러한 임지호 님의 사연과 사람에 대한 존경심, 그리고 음식이 어우러진다. 길을 가다가 어르신들만 보면 짐도 들어드리고 말동무도 되어 드린다. 집까지 모셔다 드리면 어르신들은 자연의 식재료를 나눠주시거나 함께 약초나 풀을 뽑으면서 그것들의 효능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임지호님은 부엌에서 그 재료들로 뚝딱 음식을 만들어낸다. 부엌이 신식이건 나무를 떼서 불을 지피는 구식이건 아랑곳하지 않고, 그만의 솜씨로 예술같은 음식을 만들어 낸다. 특히 할머니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데 아마도 자신의 어머니들에 대한 그리움을 대신하는 것 같다. 밥 한번 차려드린 적 없는 어머니들을 대신해서 길에서 만난 분들을 어머니 삼아 정성스럽게 음식을 해드리고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고 흐뭇해한다.. 그리고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들을 향해 예쁘고 멋있다고 칭찬하면 할머니들은 누가 이렇게 예쁘게 말해주냐고 얼굴에 한껏 미소를 짓는다. 그 모습이 정말 예쁘다.
세계인의 주목을 받은 그의 음식
그의 요리는 한마디로 투박하다. 정확하게 계량해서 양념을 하는 것도 아니고, 식재료를 보면 그만의 아이디어가 발동해서 뚝딱뚝딱 어떤 음식이라도 만들어 내는 것 같다. 아무래도 방황(랑)하면서 식당에서 요리법을 어깨너머로 배우고, 연습하며 익힌 길 위의 솜씨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런 그가 요리학교 졸업장하나 없이 그가 개척한 자연식재료를 이용한 자연조리법은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다큐멘터리 <밥정>에서는 그가 많은 외국인들 앞에서 요리를 시연하고 설명하는 장면을 통해 독특한 그의 요리 세계가 얼마나 관심을 받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투박한 정이 있는 음식, 그리고 김순규 할머니
지리산 한 마을에 살고 있는 김순규 할머니와 그녀의 남편을 우연히 만난 후 길 위의 어머니로 10년간 모셔 왔지만 어느 날 할머니의 부고를 듣게 된다. 그를 보면 언제나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반갑게 맞이했던 김순규 할머니. 그의 표정에서 더 이상 할머니를 볼 수 없다는 절절함이 묻어 나온다.. 그에게는 어머니와의 세 번째 이별이 된 셈이다. 임지호 님은 지리산을 찾아가 할머니 집에서 사흘 동안 108가지의 음식을 혼자 만들어 낸다. 투박한 음식은 투박하게, 화려한 음식은 화려하게, 각각 재료 본연의 특성을 살려 삶고, 끓이고, 무친다. 세 명의 어머니의 명복을 빌고, 그리움을 음식으로 표현한 게 아닐까 한다. 김순규 할머니의 딸이 108가지의 음식을 보고 감탄하며 눈물을 흘리고 고마워한다. 혼자 남은 할아버지가 안쓰러운지 임지호 님은 할아버지의 손을 연신 잡아준다. 할아버지와 가족들은 그의 음식을 맛있게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어느 누가 이렇게 할 수 있을까? 가슴아프게 사무친 그의 사연이 아니었다 할지라도 그는 천성이 사람과 자연을 좋아하고 존중하는 이가 아니었을까 한다. 다큐멘터리를 보는 내내 그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저 세상이 있다면 거기서도 밥정을 나누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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